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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개의 파주이야기< 7> 산동에서 본 파주와 교하 (1)

입력 : 2018-06-15 12:03:52
수정 : 2018-06-21 10:56:26

묵개의 파주이야기< 7>  산동에서 본 파주와 교하 (1)

또 봄이 왔다가 지나갔습니다. 훗날 2018년의 봄을 생각하면, 다른 어느 해보다 특별했던 봄으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지난 4월 초, 친구들과 함께 중국 산동성에서 봄을 맞이했습니다. 여행은 걸어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고 합니다. 또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인가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이번 여행에 산시춘유회(山詩春游會)’라는 타이틀을 붙였습니다. 산동과 시를 즐기는 봄나들이라는 뜻입니다. 산시춘유회는 고대 중국의 제자백가 가운데 대부분을 낳은 산동을 찾는다는 의미와 함께 평생의 지기들끼리 함께 하는 귀중한 기회였습니다.

저에게는 바다 건너에서 파주를 생각한다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파주 이야기를 하다가 왜 중국의 산동인가 궁금하시지요? 파주 교하의 삼수합처를 황해 건너편에서 마주보는 곳이 바로 산동성이며, 그곳에는 중국의 변화무쌍한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파주 교하는 중앙무대가 아닙니다. 이런 공간적인 제약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중앙에서 떨어진 교하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중앙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변경, 즉 경계선상에 대한 의식이 높은 편입니다. ‘변경이라는 공간은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기 쉬운 곳이며, 변화의 가능성이 그 만큼 높은 곳을 의미합니다.

파주와 산동의 공통점을 생각하며, 파주 이야기에서 잠시 샛길로 들어가 산동성을 함께 여행해볼까요?

중국 산동성은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우리나라와 가까웠습니다. 고대 제자백가가 꽃을 피워 중국문화의 원형을 만든 곳이기도 합니다. 산동은 중국에서 동쪽 변경에 해당합니다. 변경이었으므로 중앙이 생각하지 못하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관중은 제환공을 도와 중국 최강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이후에도 산동은 각종 저항의 중심이자,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정치적 변화가 있을 때는 산동을 차지하는 쪽이 승자가 되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북방에서 가장 적극적인 개혁조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국교를 회복한 이후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산동성의 관문인 칭다오 공항까지는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립니다. 칭다오 공항에 내려 유명한 도교의 성지인 라오산에서 하루를 지내고 일찍 공자의 유적지가 있는 곡부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문득 곡부에서 맹자의 고향 추성이 가깝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대장부론으로 청춘을 뜨겁게 달구었던 그가 살았던 곳이 그리웠습니다.

그러나 생각처럼 맹자의 생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네비게이션의 지시를 따라 여러 곳을 배회하다가 간신히 생가를 찾았습니다. 너무 초라한 것에 우선 놀랐습니다. 늘 예리한 말로 우리를 놀라게 하던 나의 벗 녹파는 Vice의 실체(공자를 일인자로 칭하며 맹자를 이인자라고 하는 세상의 인식)라고 하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간신히 찾은 맹자묘에서는 마침 한식을 맞아 맹씨후손들의 봉토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우리도 삽을 들고 동참했습니다. 맹자의 후손들은 우리를 진심으로 반겼습니다. 일부러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는지 한 벗은 흙을 거머쥐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양혜왕을 만나 왜 어떻게 해야 옳은지는 묻지 않고 어떻게 해야 유리한지를 묻느냐고 일갈했던 맹자가 오늘의 세태를 보면 무슨 말을 할까요? 중국은 오로지 부국강병에 매진하며 대국으로서의 진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다음날 찾은 공자의 성지는 웅장했습니다. 일반인은 물론 수많은 학생들이 깃발을 들고 참배하고 있었습니다. 고색창연한 건물군과 수많은 유적들, 역대 왕조의 여러 황제들까지 찾아와 남긴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늘도 있습니다. 한때 실각했던 모택동이 정치적 부활을 위해 문화대혁명이라는 기치를 들고 공자를 공격하게 시작했습니다. 혁명이 아니라 문화대파괴운동이었습니다. 철부지 홍위병들은 공자의 유적지를 비롯한 전통문화 유적을 무자비하게 파괴했습니다.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우리가 방문했을 때까지도 복구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집권자는 집권하기 전과 후가 다릅니다. 전통문화를 격렬하게 공격하면서 집권한 후, 자신감을 회복하면 곧바로 전통문화숭배로 방향을 전환합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공자에 대한 대우입니다. 미국과 G2를 이룬다고 자부하는 지금 공자부활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이 패권주의로 들어선다는 신호입니다.

공부에서 태산으로 출발했습니다. 태산 정상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태산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묵개 서상욱 --학사 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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